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삐딱하게 보면 매우 자본주의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씹어 보면 참으로 맞는 말이고 당연히 맞는 말이다.
교육은 중요하다. 내 후손의 후손들이 잘 살기 위해서? 오로지 우리 나라 또는 우리 민족이 최강의 집단이 되어 남들 등쳐 먹고 살기 위해서? 물론 그런 뜻으로 저 귀한 말을 써먹는 못된 놈들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교육은 한 인간의 완성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위한 토대이기 때문에 백년을 내다보는 마음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교육은 중요하다. 입시 시험 잘 봐서 명문대 가고, 고시 잘 봐서 전문직종 자격증 따기 위해 중요한 사항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고귀할 수밖에 없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교육이 중요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고, 인간은 개인으로서는 외롭고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육이 중요하다.
대학부터라면 몰라도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평등한 교육기회가 모든 사회 구성원 즉, 민중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이란 너도 나도 똑같은 성적 받기라는 몰상식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미리 말하자면, 내 주장의 핵심은 사교육 전면 금지시키고 공교육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이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 아주 간단하다. 사교육을 엄격히 단속/처벌하면서 공교육 교직원 수입을 고소득 직종의 것으로 만들어주면 된다.
구미 선진국들의 교직원 수입이 별로 높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는 질투 어린 주장은 그만 입 다물어 주기 바란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기준이 있으면 되지, 왜 편할 때마다 구미 선진국의 별 희한한 것까지 다 따라 해야 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나? 선생님 아니다. 교직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다. 내 아내? 가정주부이고, 교직을 한 때 생각한 적 있지만, 이제 나이로 보나 여러 조건으로 봐서 더 이상 기회도 없다. 내 일가 친척? 생각나는 모든 일가 친척의 직업을 떠올려 볼 때 사촌 형수 한 분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설마 내가 주위 일가 친척 중 사촌 형수 한 분의 장래 수입 걱정 때문에 교직원 수입 팍 올려주자고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런 왜곡된 정신의 소유자가 없기를 바란다.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 종사자들 연봉을 일류 대기업 직원 수준으로 확 올려야 한다. 그리고 플러스 알파로 교직원 연금 제도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즉, 결론적으로 선생님 되는 것이 대기업 직원 되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대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나라 공교육이 살아난다. 교직원이 인기 직종이 되면 당연히 우수 자원이 몰려들 수밖에 없고, 사회적 우수 자원이 어린 아이들 교육을 맡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환경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회/경제 활동을 할 즈음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되지 말라고 해도 이미 최강의 선진국에 진입해 있을 것이다.
우수 자원이 너무 선생님만 지원하면 곤란하다고? 글쎄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소위 고소득 전문직이라 불리는 변호사, 의사, 변리사 등등 그런 직업 다 합한 숫자와 초중고 선생님들 다 합한 숫자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고 검색해볼 의향도 없다. 중요한 것은 머리 똑똑한 우수 자원이 변호사나 의사 하는 것 보다는 선생님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이다.
변호사나 의사를 천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직업 역시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변호사와 의사는 그 직업의 본질을 볼 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지 대단히 뛰어난 두뇌가 결코 선행 조건이 아니다. 변호사란 원래 억울한 사람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것이 그 직업의 본질적 존재 이유 아닌가? 가진 사람 내지 가지고자 하는 사람의 이권을 대변하는 직업은 말 그대로 번역하면 ‘변리사’지 변호사가 아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 수료하면 변호사 자격 외에 따라붙는 여러 추가 자격증이 있고 그 플러스 알파 중에는 변리사 자격도 있다고 한다. 이 줏어 들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참 개탄스러울 정도로 무소불위적인 사법시험 제도가 아닐 수 없다. 판검변이 동시에 나오는 시험에 덧붙여 변리사 자격증이라니! 최고 우선순위 개혁 대상이다. 여기서 또 첨언. 나 변리사 아니다. 시험치기도 너무 늦었고, 일가 친척 중에는 아무도 없다.)
의사도 마찬가지. 의사라는 직업 구성 요건의 우선 순위는; 사람에 대한 사랑 >> 오랜 시간의 경험 > 손기술 > 제반 지식이다.
의사라는 직업 구성 요건을 위와 같이 확실히 결론짓게 만드는 최근의 일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 큰 아들의 맹장 수술 건이다. 맹장이라는, 나 같은 문외한의 피상적 지식으로는 그 확실한 증상을 두고 종합병원 의사들은 이틀 간이나 고민을 했다. 이 말은 결코 내가 의사를 무시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의사들이 이틀간이나 고민한 것이다. 돈벌이 때문에 함부로 사람 몸 우선 찍찍 찢어발겨놓고 보던 시대는 지났다. (큰 녀석 생후 2개월 때 병원 응급실에서 그 의사 새끼의 씨불거림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 애 배를 열어봐야 알죠.” 사람 몸이 자동차 보닛도 아니고 허 참 새끼스러운 의사 새끼였다.)
모든 생명이 무릇 다 그렇겠지만, 특정 생명이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는 특히 더 신비스럽고 오묘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므로 배 아프다고 울상 짓는 큰 아이를 두고 의사들은 심사숙고 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심사숙고 자체가 더 고마웠던 것이다. 맹장염 하나를 두고 그 고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몸이 보여주는 그 화려한(?) 증상들이 의학 서적 만권 읽어 외운다고 제까닥 나올 수가 없다는 증거다. 따라서 의사라는 직업에는 사랑과 경험이 지식에 많이 우선하는 것이다.
아, 그리고 변호사는 잘 몰라도 의사도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이어야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결정적 순간에 사람 목숨을 다루는 직업 아닌가.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돈이라는 형태로 보상되어야 마땅하다. (또 첨언. 나는 의사가 아니며 내 일가 친척 중에도 의사가 없다. 참으로 평범 그 자체인 집안이 아닐 수 없군.)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변호사나 의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랑만 크다면 내 아이가 덜 떨어진 이상주의자가 될지 모른다. 머리만 똑똑하다면 내 아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출세 지향적인 놈이 될지도 모른다. (정의를 빙자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일부 이익 집단들을 우리는 지금 생중계로 보고 있다. 사실 그 직업군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엄정한 객관성이다. 정의를 우선 순위에 두게 되면 지금 우리가 똑똑히 보는 것처럼 불의와 탐욕을 정의라고 지 맘대로 정의하는 볼썽 사나운 꼬라지를 맞이하게 된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똑똑함과 사랑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도 당연히 많은 직업이다. 소위 초딩이라고 불리는 요즘 애들. 한 마디로 굉장한 녀석들이 꽤 있다. 나 개인적으로 모 초등학교에서 자원 봉사할 때 정말이지 ‘애새끼 대가리를 콱~!’이라는 소리가 목구멍 직전까지 올라오게 만든 놈들 많았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대단한 스트레스 면역성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선생님은 내 아이를 상당 시간 가르치고 길러주는 분이다.
학원? 이건 사설이고 사교육이다. 학원? 나도 큰 아이 보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기 싫어하는 녀석 내가 억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다 하니 나는 그냥 학원비를 지원해줄 뿐이다. 제 발로 가다니 기특한 녀석이라고? 절대로! 나는 내 아이가 기특하다기 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몇 발을 앞서 간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 녀석이, 지 진로를 생각해보고 이것 저것 알아보더니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학원엘 가야겠다고.
아이의 현재 꿈은 천체물리학자다. 나는 틈나면 말한다. 천체물리학자 되는 자격에 과학고 나와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하지만 아이는 확고부동하다. 자기 꿈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학고에 가야 한다고. 아이의 이 확고부동함에 논리는 없다. 다만 이 비뚤어진 입시 풍토가 아이를 그렇게 세뇌시킨 것이다. 천체물리학자 되려면 좋은 대학 나와야 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려면 특목고 가야 하고, 특목고 중에는 과학고가 제일 좋고. (내 지금 솔직한 마음은 특목고를 당장 다 때려부수는 것이다. 특목고 학생들, 미안하다. 이 애비 마음 너희들이 학부모 되면 알 거다.)
나? 한국 사람이다. 한국 부모다. 과학고 가고 싶어 제 발로 학원엘 가겠다는데 그걸 굳이 뜯어 말릴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다. 아니 생각은 자주 하지만 실행에는 절대로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부모니까. 내 마음 어느 한구석에 은근히, ‘나는 과학고 학생 학부모다.’라는 자랑을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지 나도 모른다.
어느 일본 사람이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을 봤다. 그 중에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다. 한국 경제 살린다고 강이니 운하니 이런 삽질만 할 생각 말고 사교육을 당장 전면 폐지하라고. 그러면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자연스레 내수 경제 활성화에 쓰인다고. 사교육에 쓰이는 돈은 결코 생산적인 소비가 아니라고.
지극히 쉬우면서도 당연한 말이다. 소위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 왜 도대체 사교육을 이렇게 그냥 손 놓고 쳐다보고만 있는지 참 답답하다. 하기야 어떤 사람은 공교육 자리를 노리면서 사교육의 돈도 빌렸다지. 그 정신 세계가 참 궁금하다.
아이가 수학 문제 푸는 것을 가끔 보노라면, 학원 교육의 폐해를 절실히 느낀다. 아이는 수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풀이를 하는 것이고 정답 맞히기 경주를 하는 것이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음미해야 마땅할 나이에, 문제 풀이기 경주에 내몰리고 있고, 학원에서는 열심히 ‘오로지 문제 푸는 요령’만을 가르치고 있다. 위에 말한 일본 노신사의 말마따나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본질적으로 생산적일 수가 없는 이 미친 게임에 나도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이 현실이 참으로 밉다.
그래서 나는 공교육 선생님들의 대폭적인 연봉 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세금 증가? 나는 기꺼이 부담할 것이다. 삽질하자고 내 주머니에서 빼앗는 돈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아름답게 가르치라고 선생님께 드리는 대가이므로 나는 흔쾌히 내겠다는 것이다.
선생님들 연봉을 대폭 인상하면 초반에는 몇 가지 역풍이 있을 것이다. 우선, 현재 교사직에 있는 선생님들. 이 양반들 사실 작은 로또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력 들이지 않고 거저 먹는 셈이기 때문이다. 표현이 과격하다고 느끼는가? 과격한 표현에 앞서 당근 자체가 더 달콤하지 않나? 이런 로또에 대해 당연히 선생님이 아닌 직군 종사자, 즉 내가 포함되는 바로 그 ‘선생 아닌’ 직업군의 불만은 당장 불거져 나올 것이지만 할 수 없다. 이런 일시적 갈등은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냥 뭐, 지금 당장 선생 직업 가진 친구들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술 얻어 먹는 것으로 참아 넘기는 수밖에 없다.
한편 사교육을 전면 금지시키게 되면 몇 명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당장 사설 학원 선생들의 직업이 끊기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소정의 평가 단계를 거쳐 공교육계로 흡수하면 된다. 이 평가 단계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당연히 생길 텐데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그릇이었다면 애초 사교육 분야에서도 종사하지 않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당사자들로서야 당장 직업이 끊기니 불만이 엄청나겠지만.
그런 불만에는 이런 예를 들고 싶다. 시대의 변화에 의해 사라지는 직업의 예는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버스 안내양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여객기 항법사나 기관사도 마찬가지 예다. 전투기 조종사도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직업이다. 무인 전투기들의 등장을 보면 미래가 뻔히 보인다. 이런 예들에 따라, 사교육을 전면 금지하자는 내 주장이 실현될 경우, 직업을 잃게 될 학원 선생들께는 보다 큰 틀의 차원에서 이해를 부탁 드리는 바다.
무릇 모든 개혁에는 약간의 퇴로는 열려 있어야 한다. 탈출구로서의 퇴로든, 퇴행으로서의 퇴로든 말이다. 스스로 특권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숨 쉴 구멍 즉, 이 경우에서는 고급 사립학교라는 기회는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략 인구 백만명 당 약 100명의 한 학년 정원 정도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초중고 총 12년을 합하면 인구 백만명 당 1200명의 고급 기회 내지 맘껏 돈 쓸 기회 또는 돈 자랑 할 기회는 열어주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가 대략 5천만이므로 전국적으로 50개씩의 초중고 고급 사립학교를 열면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립이므로 학비를 얼마를 받건 그건 그 학교의 재량으로 맡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 선발을 실력으로 뽑건, 경매로 뽑건 그것 역시 학교의 재량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F4 왕자님과 그 부모들의 욕망 배출구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 방식이 실현되면 한 해에 5천명의 특권층 자제들이 대학 진학 기회에서 다른 공교육 출신 및 검정고시 출신들과 겨루게 될 것이다. 대학 입학 기준이 매우 객관적이고 엄격한 한, 매우 특수한 교육을 받아 매우 뛰어난 객관적 실력을 갖춘 학생이 자기 입맛대로 가고 싶은 대학 골라잡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실력으로 인정해야 한다.
특수 고급 사립 교육을 받은 5천명의 학생 모두가 공교육 출신 학생들을 압도적으로 앞설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게 겁나서 그런 사립 기회조차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못나고 왜곡된 공산주의적 사고 방식에 물든 것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특수 교육을 한들 저 5천명 중에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은 암만 후하게 잡아도 5백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4천5백명의 실력은 공교육 출신의 우수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다.
부모 잘 만나 최고의 사립 학교에서 고급 교육을 받고 대단한 실력을 갖춘 아무리 후하게 잡아 5백명 남짓의 학생. 그 정도는 우리가 ‘경쟁의 우위에 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다. 그마저도 인정 못하면 그건 정말이지 못난이 물귀신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대학 입학에 관한 한 정원 외 기부제 입학(단, 사립대만)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립대학 당 한 학년에 학과당 2명 정도는 기부제 입학을 허용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충분히 성숙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시나리오를 보자. 부모 잘 만나, 특수 사립 초중고를 거치게 되는 한 학생. 그런데 애가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논다. 더구나 성격도 더럽다. 한 마디로 눈꼴 시다. 그런데 이 녀석이 부모 돈으로 한국 최고 사립대에 기부 입학을 한다. 그런데 얘 적성이 그 학과에 딱 맞아서 거기서 드디어 숨겨진 재능을 발휘해서 학과 수석 졸업하고 그 이후 승승장구한다. 여전히 성격은 더럽다.
자, 가만 생각해보자. 이런 아이가 기부 입학해서 수석 졸업했다면 그건 기부 입학제의 폐해를 논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아이 때문에 기부 입학의 폐해를 운운하고 절대 불가 방침을 말한다면 그 역시 못난 물귀신이요, 비뚤어진 공산주의자일 따름이다.
확률적으로 봐서, 그냥 놀다가 기부 입학한 아이가 과 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매우 낫다. 졸업이나 제대로 하면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단, 교수가 부잣집 또는 권력층 아이 협박 때문에 또는 미리 눈치 봐서 학점 후하게 주는 꼬라지는 절대적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런 덜떨어진 사례는 이 글에서는 더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이 적성이 드디어 맞아서 능력을 꽃피웠다면 그건 박수 쳐줄 일이지 결코 욕할 일이 못된다. 또한 뒤늦게 적성과 전공의 궁합이 그렇게 잘 맞았다면, 그건 대학 당국의 선발 능력을 탓할 일이지 결코 그 아이 또는 기부 입학의 폐해를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 이제 정리하자.
사교육은 당장 전면 폐지
공교육 선생님들 연봉 대폭 인상. 일류 대기업 수준 또는 그 이상
인구 백만명 당 한 학년 정원 100명 수준의 사립학교 허가
사립 대학 기부 입학제 허가 (많이 잡아서 학과 정원 당 2명 정도)
우리 큰 아이는 이미 늦은 시기에 들어가겠지만, 둘째라도 제발 좀 정상적인 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