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위해 사람들이 최초로 시도했던 방식은 나노 로봇이었다. 나노 로봇들이 혈관 내부를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DNA 분자 배열을 태어나던 당시와 동일한 아니 적어도 나노 로봇이 투입된 시점으로부터 더 이상의 염기 배열 변형이 없도록 함으로써 적어도 노화의 시간은 멈출 수 있다는 것이 처음의 기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의 덧없는 기대였음이 곧 드러났다. 나노 로봇이 처음 시술되기 시작한지 두 세대가 지나지 않아 유전자 복원 또는 유지에서 심각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DNA의 긴 사슬이 가진 신비함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 수반되는 약간의 DNA 복사 오차. 그것을 건드렸을 때 심각한 정신질환이 나타난다는 것이 나노 로봇 시술의 치명적인 부작용이었다. DNA 복사 오차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았다. 그것은 복원시켜서도, 유지시켜서도 안 되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은 것이다.

의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뇌세포는 여간해서는 분열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다시 살아난다거나 자신을 복제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뇌를 제외한 육체의 다른 기관이나 장기를 다루고자 하였건만 뇌와 관련없는 부위의 세포 복제에 관여한 결과는 정신질환이라는 치명적 되먹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결국 사람들은 또다른 그러나 유전적으로는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육체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체세포 복제가 아니었다. 수정란 시절에 인공 분열을 시켜서 수백개의 동일한 수정란을 보관하고 필요할 때 배양시켜 자신과 동일한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뇌 또는 자아였다. 인간의 기억이 컴퓨터로 옮겨지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인간의 자아가 컴퓨터로 옮겨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생명의 신비는 우주의 신비만큼이나 깊은 것이다.

해결책은 뇌를 들어서 옮기는 것이었다. 자아가 담긴 원래의 육체, 그리고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나 자아는 없는 빈껍데기 육체. 이 둘 사이에서 뇌가 옮겨지는 것이다.

뇌는 각종 첨단의 의학을 통해서 수명이 획기적으로 길어지기는 했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평균적으로는 500년 안팍이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500년은 실로 긴 세월이다. 5세기를 사는 인간.
하지만 인간 사회에는 여전히 계층이 존재하고 있었다. 5세기라는 혜택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 5세기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 가지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500년이라는 기회는 사실상 영생인 것이다. 그러나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5세기는 여전히 짧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계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또다른 방법으로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마침내 양자 엔진을 완성하였다. 1G의 가속도로 4달을 꾸준히 가속하여 빛의 속도의 3분의 1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과거에 비추어 본다면 실로 엄청난 발전이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 비한다면 여전히 미약하기 짝이 없는 느린 발걸음일 뿐이다.

양자 엔진이 출현함으로써 인간은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스스로 우주 공간 너머로 발사한 모든 탐사선을 모조리 수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다 더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새로운 탐사선들을 꾸준히 더 먼 세계로 보내고 있다.
유인 비행으로는 이미 센타우르스의 프록시마에 이르렀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거대한 공간을 가로질러 마침내 또다른 별에 이른 것이다. 프록시마에서 행성은 발견되었지만 그것은 마치 태양계의 수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별에 너무 가까이 있었고, 더군다나 프록시마는 삼중성의 하나이니 이 불쌍한 행성은 사실상 밤도 없이 마치 오븐 속 감자처럼 매일 매일 구워지고 있었다.

프록시마에 다녀오는 것은 왕복 50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1초에 10만 킬로미터 이상을 날아가는 엄청난 속도에다 그에 따른 상대성 원리의 효과 역시 확연히 나타나는 수준이지만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만은 그렇게 상대적이지 않았다. 엑스테라 1호의 14명 승무원들에게도 4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목숨을 건 대장정이었지만, 그 용감한 승무원들이 확인한 것은 '지구는 여전히 외로운 섬'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무인 탐사선은 이미 10광년의 거리에 도달했고, 태양이 아닌 또다른 별도 이미 9개나 탐사가 되었으며 그 주변에서 화성과 비슷한 행성도 발견이 되었지만 대양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행성은 아직도 가능성의 세계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외로운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밖으로보다는 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태양은 생각보다 여전히 안정적인 것으로 드러났고, 화성의 지구화는 이미 프로젝트가 소멸된지 오래였다. 달 기지도, 화성 기지도 이제 더 이상은 피난처가 아닌 그저 광산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지구의 인구는 100억명 선에서 안정되었고, 외계 기지의 거주 인구는 다 더해도 100만명이 되지 않았다. 지구는 원래부터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태양이 더 이상 따뜻한 태양으로서가 아니라 지구의 대기를 날릴 정도의 광폭한 죽음의 행진을 시작하는 시점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억년 이후였으니 인간에게는 그저 영원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우주에서 외로움을 확인한 사람들은 이제는 시간의 확장을 꿈꾸었다. 영생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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