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지름은 12,732km.
대기권 중 대류권의 높이는 약 11km.
그러므로 대류권의 두께는 지구 지름의 천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지구를 지름 1m짜리 공에 비유한다면 대류권의 두께라는 것은 고작 1mm 남짓한 셈.

언뜻 상상하면 커다란 거인이 입으로 훅 불면 다 날아갈 것만 같은 연약한 두께다.
이 얇디 얇은 공기 층 아래서 우리가 살아간다.

데이터 압축기술에 대해서 아는 바는 거의 없다. mp3라는 소리 압축기술에 대해 그나마 확실하게 아는 두 가지 정도는;

- mp3는 인간의 가청 주파수 범위만을 다루고 이 범위 바깥은 없애 버린다. 따라서 '손실' 압축이다.
 
(정확하게는 가청 주파수 이상의 범위 일부가 포함되나, 고주파수가 손실된다는 것은 어쨌든 사실이다.)

- 가청 주파수 안에서도 (기술적으로 이해는 잘 가지 않지만^^;) 손실되는 정보가 있다. 

mp3 뿐만 아니라 다른 압축기술 즉, 요즘 말로 멀티미디어 압축기술이라 불리는 음성 및 영상 정보 압축기술은 알고 보니 대다수가 손실 압축이라고 한다. 비록 머리에 손실이 붙지만 보통 사람이 인지하기에는 큰 탈 없이(?) 원본처럼 들리므로 별 무리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보통 사람인 나는 큰 불만 없이 mp3를 듣고, 영화를 감상한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는 오히려 감탄할 때가 많다. 이야, 한 편의 영화를 이렇게 선명하게 보는데도 전체 데이터는 1.4GB 정도 밖에 되지 않다니!

사실 클래식 음악을 mp3로 들으면 이상하게도 CD나 LP로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 나질 않는다는 사소한 불만은 쭉 가져왔었지만 어차피 mp3나 영화나 모조리 불법으로 감상하는 내 입장에서 그리 큰 목소리 낼 수는 없다. ^^;

mp3가 사실은 손실 압축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단박에 든 궁금함이 있다. 사람의 인식 범위를 고려한 손실 압축이다. 그렇다면, 개나 박쥐에게는 mp3가 과연 얼마나 원본에 가깝게 들릴까? 이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인지과학과 관련한 MIT 자료들(http://web.mit.edu/persci/) 몇 개를 봤는데 역시나 동물이 느끼는 감을 인간이 정량적으로 읽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물이 사람의 말을 배우거나, 사람이 동물의 말을 배우지 않는 한.

아무래도 영어로 된 자료를 보는 속도란 우리말이나 글로된 것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쪽 자료들을 몇 개 찾아봤는데 MIT 같은 기초과학의 느낌을 주기 보다는 뭐랄까 양 극단으로, 한쪽 끝은 형이상학에 좀 가깝고 다른 쪽 끝은 너무 돈될 만한 응용분야에만 집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대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느낌이 아님을 이해해주시길. MIT 자료에도 보면 너무 서구적 관점에서만 보거나 또는 '장난치나?' 느낌이 드는 현재 연구 주제들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명저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시저가 했다는 가슴에 팍 찔리는 명언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골라서 본다." 시저는 보통 사람과는 반대로 보고 싶지 않는 면까지도 포함하는 현상의 여러 모습을 볼 줄 알았기에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 중 하나다.

시저류의 성공 즉, 높은 권좌나 큰 돈이 단 한 종류의 성공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있고, 나 역시 반론파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면서 마음의 다른 한 편에서는 시저류의 성공을 꿈꾸는 속물이기도 하다. ^^;)

하지만 인간은 가청 주파수나 가시 광선의 영역에 국한해서 듣고 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단지 귀로 들을 수 없다고 해서 이 불가청 영역을 싹 잘라내서 압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실용적으로는 맞는 답이다. 하지만 인간은 몸으로 들을 수도 있다. 2001년 쯤이던가? 우연한 기회에 청각장애인인 여성이 연주하는 타악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그 여성은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었는데 맨발로 무대에 섬으로써 무대 바닥이 전하는 타악의 진동을 발바닥을 통해 '듣는다'고 했다.

이 연주자가 괴물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인간이 원천적으로 가진 어떤 듣는 능력 하나를 잃어버린 청력에 대한 대안으로 키워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이렇게 몸으로 들을 때에는 귀가 가진 한계인 가청주파수 아래나 더 위를 분명히 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누구나 알게 모르게 이렇게 음악을 듣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나처럼 음악감상에 굉장히 무딘 사람도 mp3로 듣는 클래식과, CD로 듣는 클래식과, 진짜 연주장에서 듣는 클래식의 수준차이를 말로는 제대로 표현 못하지만 뭔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정보통신은 말 그대로 인간적 정보만 값싸게 전달하고 비싼 요금을 물리는데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나라당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늘 말한다.'는 정보는 회색 글자로 쓰였던, 비행기가 하늘에 비행운으로 그려서 보여주던, 아니면 음성으로 전달되던 어떤 정보로서 소통된다.

(단지 내 생각이지만) 비슷하게, mp3 역시 개별 음악이 가진 전체 자연적 정보 대신 인간에게 유효하다고 판단된 일부 음악적 패턴만을 골라서 전달하는 기술이며, 영상 압축 기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뭔가 가공된 정보를 옮기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공상이지만, 있는 현상을 그대로 옮기는 기술은 과연 누군가 연구하고 있는지 또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반대로 적절한 정보만 취하면 충분하지, 모든 것을 다 재현하려는 것은 덧없는 '인간적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추신 1. 두뇌와 연결된 가상현실 내지 증강현실이 또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킹콩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킹콩이 되어보는 그런 류의 영화기술.

추신 2. 너무 집착해서 따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돌이켜 보니 DSP 즉, Digital Signal Processing 자체에 이미 손실이라는 특성이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얼마나 조밀하게 smapling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니까.


사진출처 = 사진 받은지 오래되서 아리송--; 대충.. 미국 공군 사이트 어디쯤.

항공모함에서 함재기가 이륙할 때는 자체 추진력 만으로는 제한 거리내 이륙속도 도달이 어려우므로 활주로 갑판 아래에 장치된 캐터펄트의 도움을 받는다. 캐터펄트는 압축 증기를 추진력으로 사용한다.

사진에서 바퀴 앞 부분을 보면 항공기에서 내려온 걸개(tow bar)가 캐터펄트의 홈에 막 걸리고 있다. 마치 손가락 두 개로 짧은 막대기 또는 공을 집어던지는 모습과 흡사하다.

한편, 캐터펄트 발사 이후에도 항공기는 최대한의 추진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므로 엔진에는 최대 출력이 걸려 있다. 현대의 전투기 등은 엔진에 최대 출력을 걸 경우 바퀴의 제동력 만으로 항공기를 제 자리에 붙들어 둘 수가 없다. 따라서 추가적으로 비행기를 뒤에서 붙들어줄 장치가 필요한데 이 장치는 사진 속 바퀴의 바로 뒤에 찍혀 있다. 

주황색 굵은 봉(release bar 또는 holdback bar)이 항공기 노우즈 랜딩기어에 걸려 있다. (사진 속 작은 스프링 부분(holdback). 또는 더 멀리에 찍힌 사람의 왼손 끝부분)

주황색 봉이 항공기를 붙잡고 있는 부위를 자세히 보면 거기가 약간 잘록한 즉,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은 항공기의 최대 추진력만으로는 부러지기 어렵지만, 캐터펄트가 잡아채는 힘이 더해지면 딱 끊어질 수 있는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

이륙 명령이 떨어지면 캐터펄트에 추진력이 걸리고 바퀴 뒤에서 비행기를 붙잡고 있던 봉이 끊어지면서 항공기는 앞으로 발사되는 것이다.

세차운동은 회전축 자체가 원운동을 보이는 현상이다. 회전축의 원운동은 자이로스코프 효과와 외부 모멘트 사이의 균형에서 나타난다. 회전하는 물체의 대표로는 팽이와 지구를 들 수 있다.

먼저 팽이.

회전축이 하늘을 향한다고 하자. 이는 지구를 바라볼 때의 자전방향과 일치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힘차게 도는 팽이는 당연히 똑바로 곤두선다. 팽이의 무게중심은 회전축 상에 있는데 어떤 외력이 작용해서 팽이가 살짝 기울어지면 지구 중력에 의한 모멘트가 팽이의 무게중심에 작용한다.

원래의 회전관성 위치로부터 이탈하자마자 팽이에는 자이로스코프 회복력이 모멘트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최초의 '기울어지는 운동'은 회전축이 팽이 회전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돌게 만든다. 일단 회전축 자체가 회전을 시작하면 자이로스코프 회복력은 팽이를 원래의 꼿꼿한 자세로 세우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팽이의 원래 회전이 충분히 강하면 웬만한 외력이 팽이를 기울여도 팽이는 얼른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선다.

만약 회전이 충분히 강하지 못하면 그냥 엎어진다.

그리고 팽이를 엎어뜨리려는 중력에 의한 모멘트와 자체 회전에 의한 자이로스코프 회복 모멘트가 균형을 이루면 팽이는 세차운동 상황에 들어간다. 팽이도 돌지만 팽이의 회전축도 원래 회전방향과 동일하게 빙글빙글 돌게 된다.

팽이 꽤나 돌려본 사람들은 얼른 이해가 갈 것이다.


다음으로 지구.

지구도 따지고 보면 거대한 팽이다. 더구나 자세히 보면 약간 납작하다. 자전에 의한 원심력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지구 자전축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태양 공전면에 대해 이십몇도 기울어져 있다.

지구의 납작함을 좀 과장해서 레코드판처럼 대단히 납작하다고 보자. 그리고 이 레코드의 회전축은 태양 공전면에 대해 기울어져 있다. 태양의 중력은 이 레코드의 회전축을 공전면에 직각되게 세우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지구 위에서 돌던 팽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외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지구의 중력은 팽이를 눕히는 방향으로 작용했지만, 태양의 중력은 지구라는 회전하는 레코드를 세우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외력이 반대방향이므로 당연히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은 지구 자전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돈다.


여전히 지구 자전축이 애초에 왜 기울어졌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아마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운석에 두들겨 맞은 결과일 수도 있다. (자전축의 기울어짐과 이로 인한 필연적 세차운동이 인간원리 관점에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지구의 자전과 이에 반대방향인 세차운동, 그리고 태양의 지구 자전축 세우기방향 중력작용의 조합으로 지금의 지구 세차운동이 유지되고 있다.

아래 그림(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Precession)을 보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그림 속에서 북극 지역은 백야 조건에 있다.) 태양의 중력은 납작한 지구의 자전축을 똑바로 세우려 하고, 지구의 자전 자체는 그림에 흰색 큰원으로 나타난 세차운동과 결합되어 지구 자전축을 태양 방향으로 눕히려고 한다. 이 둘이 평형을 이룬 결과가 지금 이 순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구 자전축 세차운동의 주기는 대략 26,000년 정도라고 한다. 참 길다.~

만약 지구의 자전이 조금 더 느려지면 지구 자전축은 태양 공전면에 대해 직각으로 서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계절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팽이의 세차운동은 이미 완성된 형태의 팽이를 돌리고 나중에 이를 누군가 툭 쳐서 유발시키는 것으로 최초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 반면, 지구의 세차운동은 팽이처럼 원인부터 따지고 보면 헷갈리기 일쑤다. 우주의 먼지로부터 뭉치던 티끌모으기 단계에서부터 잘 고찰해야 한다.

요즘 귀차니즘이 많이 작동해서 깔끔하게 에디터로 정리 못하고, 파워포인트 파일 그리고 이미지 파일로 올립니다.

(오타가 있네요. 아랫부분에서 W는 지구자전 각속도 Omega입니다.--;)

그림에서 글자가 깨져 보입니다만, 클릭하면 원래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기 분자들은 지구의 중력에 의해 아래 방향으로 차곡차곡 붙들려 있고 그래서 아래 위의 압력 차이가 발생한다. 기상현상에 의한 국부적인 압력 역전을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보면 위의 압력은 아래의 것보다 항상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는 그 안에 놓인 모든 물체에 대해 부력을 발생시킨다.

 

공기의 부력이라 하면 언뜻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영장이나 바다에서의 수영을 한번 상상해보라. 물이 내 몸에 작용시키는 부력을 실감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물 속에 있을 때 내 몸의 표면을 이루는 피부는 주위의 물과 닿아 있다. 따라서 내 몸을 감싼 물은 당연히 내 피부(표면)에 압력을 작용시킨다. 내 몸 각 부분에 작용하는 물의 압력을 내 몸이 물과 닿은 전체 면적에 대해 적분하면 그 힘이 바로 부력이 된다. 언뜻 생각하면 내 몸 주위에 있는 물의 압력이 일정할 것 같고 적분 결과 역시 0으로 나올 것 같다.

 

하지만 불과 2m도 되지 않는 수영장 바닥에 잠수했을 때 가슴과 귀로 느껴지는 분명한 압력의 증가를 생각하면 아래 위의 압력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주위의 공기 역시 나에게 그리고 비행기에게 부력을 발생시키고 있다. 다만 그 힘의 크기가 워낙 작을 뿐이다. 물의 부력과 공기의 부력의 크기 차이는 정확하게 두 유체의 밀도 차이에 비례한다.

 

폐 속의 공기를 포함하는 사람 몸의 전반적인 밀도는 물과 거의 동일하다. 왜냐하면 숨을 참고 깊은 물에 가만히 몸을 담가 보면 물에 반쯤 잠긴 듯 두둥실 뜨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체중 60킬로그램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몸의 부피는 대략 60리터 정도로 꽤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사람 몸이 부피로 치면 이렇듯 의외로 작다.)

60리터에 해당하는 공기의 중량은 (표준 1기압 조건에서) 불과 74그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체중 60킬로그램에 작용하는 74그램의 부력은 정말 무시할 만한 양이다. 그래서 비행기에 작용하는 부력 역시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공기보다 명백하게 무거운 비행기 또는 항공기 즉, 중항공기다. 반면,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가만 둬도 저절로 하늘로 둥실 뜨는 비행선이나 열기구는 경항공기로 불린다. (작고 가벼운 비행기를 지칭하는 경비행기라는 말과 헷갈리지 말자.)

 

부력은 중력 또는 가속상황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상하 압력차이에 따른 부가적 현상이다. 가속이 없는 조건에서는 기체나 액체를 일정한 용기 안에 담아 압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부력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부력은 아래와 위의 압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고 이러한 압력 차이는 유체의 분자 하나 하나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곡차곡 쌓이는 효과에 의해 나타나는 것임을 떠올리면 부력이 왜 가속 또는 중력의 부가적 현상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중력 0의 우주 공간이라 하더라도 우주선이 가속 상황에 있다면 그 내부의 모든 입자들은 우주선 꼬리 방향으로 반작용을 받는다. 버스가 출발할 때 모든 승객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 일상 생활의 버스처럼 일정 속도 도달 후에 가속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가속하는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가속을 멈추면 일정 속도는 붙어 있겠지만 다시 0 중력 상황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일정 가속 조건 하의 우주선에서는 공기 분자들이 뒤로 쌓이기 때문에 꼬리 부분의 공기 압력이 머리 부분보다 높다. 당연히 부력은 우주선 앞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구로 치자면 하늘 방향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잠시 잠들게 해서는 1G 가속도로 추진되고 있는 우주선에 태웠다고 치자. 그리고 그 우주선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어떠한 창도 없다. 잠에서 깨어난 그 피랍자-경우에 따라서는 우주 여행 기회를 잡은 행운아- 1G 가속을 일정하게 받고 있는 한 자신이 우주에 있는지 아니면 지구 위 어느 골방에 갇혀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내부 관찰자가 가속 상황과 중력 조건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상대성 이론이 이미 예견한 바다.

 

부력은 유체 내에 잠긴 어떤 물체 또는 밀도가 다른 부분을 그 주위를 감싼 유체가 중력 또는 가속의 반대방향으로 밀어 올리려는 힘의 형태로 나타난다. 옆도 아니고 아래도 아닌 위 즉, 가속의 반대방향으로 밀어 치우려는 방향성이 생기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가속(중력) 조건 하에서 아래쪽 압력이 위쪽보다 높기 때문이다. 공기 중의 사람이나 바닷속의 고래는 유체 입장에서 봤을 경우, 압력의 평형을 이루려는 유체 내에 들어온 이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부력은 따라서 유체 내 이물질(사람 또는 고래)이 차지하는 부피와 동일한 유체의 중량과 똑같은 크기의 힘이 된다.

 

물체의 무게중심과 부력중심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부력이란 그 물체가 차지하는 부피만큼의 유체 중량에 해당하므로 부력 중심은 그 물체 모양과 동일한 유체의 무게중심에 해당한다. 물체 위 아래의 압력이 다르듯이 엄밀히 말하면 물체 부피에 해당하는 유체의 위 아래 밀도도 약간 다르겠지만 해석적 관점에서는 어디서나 동일한 변함없는 밀도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유체 내의 물체 역시 밀도의 등질성을 가진다면 물체의 무게중심과 부력중심은 일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밀도의 등질성이 없는 물체라면 두 힘의 중심은 서로 달라진다. 밀도의 등질성이 없는 대표적인 경우가 사람 몸이다. 공기를 담은 폐가 있는 상체 부위가 밀도가 제일 낫다. 그래서 물에 가만히 몸을 띄어 보면 상체는 대체로 뜨지만 하체는 가라 앉는다.

공기는 단일 성분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분들이 모인 혼합기체다. 수증기가 없는 건조공기를 부피로 따져 볼 때 그 중 질소가 78% 그리고 산소가 21%를 이룬다. 질소와 산소가 공기의 99%를 차지하고 나머지 1%에는 이산화탄소와 아르곤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미량성분으로는 네온, 헬륨, 일산화탄소 그리고 산화질소(NOX) 등이 있다.

공기를 이루는 주요 성분인 질소와 산소는 단독 원자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고 원자 두 개가 대략 땅딸막한 아령이나 땅콩 모양으로 하나의 분자를 만들고 있다. 이렇듯 공기라는 것은 단일한 종류의 원소도 아니고 기본 입자의 모양 역시 대부분이 구슬(일 원자)이 아니라 땅콩 모양(이 원자)을 하고 있지만, 비행기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공기역학에서는 공기를 한 가지 종류의 분자 그것도 동그란 구슬 모양의 것으로 이루어진 기체로 가정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공기 분자 하나는 대략 지름 0.3nm(나노미터) , 0.3x10-9m 정도의 동그란 구슬 모양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0.3nm라는 크기는 언뜻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작다. 대신 이렇게 그 크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0.3nm가 어떤 것(x)에 대해 가지는 크기의 비율을 그 어떤 것이 지구에 대해 차지하는 크기 비율로 모델링할 수 있다.

 

0.3nm : x = x : 지구지름

 

이 식을 풀어보면 x는 약 6cm로 계산되는데 이 크기의 지름을 가지는 동그란 물체로는 야구공이나 사과를 들 수 있다. 한편, 지구의 지름은 약 12,730km. 또는 지구의 둘레는 약 40,000km.

지구본이 있다면 그것을 직접 한번 들여다보기 바란다. 지구본이 없다면 커다란 지구 저 위에서 내가 우주비행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도 좋다. 여하튼 지구를 내려다보는 입장에서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 있는 사과 한 개를 떠올려 보자. 사과 한 개의 크기가 지구에 비한다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감이 올 것이다. 사과와 공기 분자 하나 사이에는 이와 똑같은 비율이 적용된다. , 사과가 지구만해질 때 공기 분자는 사과만해진다. 공기 분자와 사과 사이의 크기 비율은 사과와 지구 사이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공기 분자 하나가 차지하는 0.3nm 크기는 이만큼 작은 것이다.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등장하는 아보가드로 수 즉, 0°C 1기압 조건의 공기 22.4L에 들어 있는 분자의 수는 약 6.022x1023개다. 아보가드로 수는 자릿수만 해도 24개나 되는 엄청난 수다. 쌀 반 톨도 되지 않을 1mm3 부피만 해도 그 작은 공간 속에 공기 분자가 평균 2.688x1016개나 되는 공기 분자들이 들어 있는 셈이다. (숫자를 세는 단위로는 27천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2,688조의 10배에 해당하는 개수라고 하는 편이 보다 실제적으로 와 닿을 것이다.)

사과와 지구의 크기 비교나 아보가드로 수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공기 분자 하나의 크기는 사람이나 비행기의 크기에 비해 너무 작고 그만큼 개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분자 하나 하나를 뚜렷한 알갱이로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기 자체를 시작도 끝도 없이 분할되지 않는 연속적인 어떤 물질, 연속체(continuum)로 보는 것이 더 편하다. 공기에 대한 연속체 가정은 나중에 더 자세히 살피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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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1기압 조건의 공기 1mm3 부피에 2.688x1016개의 공기 분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공기 분자 하나가 평균적으로 약 37.2nm3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략 3.3nm , 공기 분자 크기(0.3nm) 10여배 정도되는 한 변을 가지는 아주 작은 주사위 만한 공간 안에 공기 분자 한 개가 들어 있는 셈이다. 공기 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주위 공간은 무척이나 텅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의 거시적 관점으로는 공기를 연속체로 취급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빽빽하다. 어쨌든, 공기가 분자들 사이에 가지고 있는 이 빈 공간은 나중에 공기의 압축성을 설명하는데 다시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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