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라는 것은 나누어보면 참 허탈하다. 일단 100여 종류의 원자로 나뉠 수 있고, 원자를 더 분해하면 양성자, 중성자, 전자 단 세 종류의 입자로 분류된다.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의 적절한 조합이 산소도 만들고, 탄소도 만든다. 그리고 산소와 탄소의 성질은 엄청나게 다르다. 원자끼리 결합해서 어떤 화합물을 만들면 좀 더 다양한 성질이 나타난다.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가 결합하면 물분자가 된다. 두 종류의 기체가 결합해서 물이 되는 것이다. 물이 가진 성질은 수소 또는 산소가 가진 것과는 또 다르다. 새로운 특성이 나타난 것이다.
물이 가진 특성을 하나 하나 추적해가다보면 결국은 소립자와 4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소립자나 4가지 힘 그 어디에도 물이 가진 성질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서 물이라는 물질과 그 특성을 만들어냈다.
생명 현상도 마찬가지다. 몇 종류의 원소가 다양한 방식으로 화합물을 만들고 이 화합물이 쌓아 올려진 어떤 개체는 생명 활동을 한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섭취하고, 스스로 운동도 하며, 심지어는 자신과 비슷한 개체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인간도 그 중 하나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를 하나 떼서 봐도, 그 세포를 이루는 원자를 떼서 봐도, 그 어디에도 '나'라는 존재의 조각조차 없다. 나는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새롭게 출현한 한 특성이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자기 물질, 플라스틱, 어떤 금속, 유리 종류 몇 가지가 적절히 섞여서 컴퓨터라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분해해놓고 보면 별 특별한 의미가 없는 평범한 물질 덩어리지만 잘 뭉쳐 놓으면 편리한 도구가 된다.
수소끼리 융합하면 헬륨이 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내놓는다. 이것은 수소가 가진 원래 특성인가? 아니면 수소와 헬륨 사이에 놓이는 불안정한 성질이 에너지로 발산되어 나오는 것인가?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의 우리가 있지만 아직 이 기나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단세포 생명이 등장해서 지금 우리에 이르는 어느 단계에선가 지성 또는 영성이라는 것이 새롭게 탄생되었을 수도 있다. 그것의 특성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다. 악어 어미가 곧 자식이 될 자기 알을 지키려는 그 본성을 단지 물질적 반응의 하나로만 볼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침팬지가 죽은 어미 또는 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은 물체 두 개가 중력에 이끌려 서로 잡아당기는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결국 이 여행의 끝은 하나로 귀결될지 모른다. 어떤 목적이 있었기에 우주가 탄생되었고 그 여정의 중간에 우리가 잠시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모여 물의 특성을 만들듯이, 더구나 물분자 하나로는 아무 역할이 없고 일정 수준 이상의 개수로 모여야 마침내 물의 성질이 드러나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원대한 설계의 한 부분일지 모른다. 새로운 특성을 만들기 위한 한 재료로서 우리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결국... 아직은 모른다는 말 밖에는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을 살짝 이 글에 맞게 바꾸었다.
"목표로 가는 과정 자체가 목표에 이른 후의 보상이다."